GJCU 생활수기 공모전

아메나와 함께 했던 그리운 시간

사회복지학과 최영옥

과거 간호사 출신으로 평소 가진 것을 남에게 나누고 싶었던 내가 서울 숭인동에 위치한 ‘이주여성인권센터’의 ‘모성보호팀’에 발을 딛게 된 것은 지난 2003년이었다. ‘이주여성인권센터’는 외국인 여성 근로자들의 인권보호, 권익신장, 모성보호 및 육아지원, 한국생활의 적응능력 향상, 성/인종 차별 철폐 등 외국인 여성들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기관으로, 특히 내가 속해있는 ‘모성보호팀’은 임산부의 산전/산후 건강관리, 신생아 및 유아 돌보기와 양육지원 등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여성 및 자녀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지원하는 센터의 부속기관이다.

그 당시에는 ‘산업연수생’, 즉 공식적인 루트를 통하여 합법적으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적지 않았지만, 반면에 연수기간이 만료되고도 체류하고 있는 노동자들, 관광비자로 입국하여 귀국하지 않고 일하는 노동자들, 모국에서 거액의 돈을 들여 브로커를 통해 입국한 경우 등 이런저런 방식으로 국내에 체류 중인 노동자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물론 이들은 불법체류자인 관계로 일반 외국인들이 부딪히는 주거문제나 언어소통문제 이외에도 강제추방에 대한 불안감, 건강보험 문제, 자녀교육 문제, 박봉 또는 임금체불로 인한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들은 오로지 ‘코리아 드림’, 즉 돈만 많이 벌어서 귀국하겠다는 일념으로 하루 12시간 이상의 육체적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아메나를 처음 만난 것은 2005년 봄이었다. 그녀는 첫 아이(오이온)를 본국에서 출산하고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하여 당시 불법체류 근로자인 남편을 찾아 둘째를 임신하게 되었다.

여느 다른 외국인 여성 임산부들과 마찬가지로 아메나 역시 별다른 준비도 없이 임신하게 되니 병원 의사와의 의사소통 문제, 건강보험 결여에 따른 의료비 문제, 산전/산후의 각종 건강관리 문제 등 부딪히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며 이것이 내가 그녀에게 해주어야 할 과제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종교적인 부분에서 비롯되었다. 종교적 율법에 의해 아메나는 가리는 음식이 많았다. 특히 라마단기간에는 해가 있는 동안에는 금식을 해고 해가 진 이후에야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산모의 영양 상태는 물론, 뱃속의 아기의 건강 상태 또한 걱정되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녀의 성품은 밝고 긍정적이었다. 한국말에 미숙했던 그녀는 의사와의 대화 가운데에서도 때로는 의학영어로, 한국어로, 방글라데시어로 의사를 표현하며 나와 의사를 웃기기도 하였으며, 어이없는 일로 인해 실소를 금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였다.

이러한 여러 우여곡절 끝에 10개월이 지나고 2.5kg의 작은 아이를 낳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집은 공장마당 구석에 세워진 월세 10만원의 컨테이너박스로 산모의 산후조리나 신생아가 자라기에는 너무나도 열악한 공간이었다. 집에 먼지가 많을 뿐 만 아니라 난방장치도 설치되어있지 않아 아이는 늘 감기몸살과 고열로 인해 시도 때도 없이 병원을 다녀야했으며 그때마다 나와 함께 이동을 해야 했다.

다행이도 얼마 후 일반 주택의 지하 단칸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으나 그곳 역시 사람이 사는 주택으로는 매우 열악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큰 그릇으로 물을 받아야했고 벽에는 시커먼 곰팡이가 피어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메나의 가족은 이 집이 이전의 컨테이너 집과 비교하여 천국과 같다며 행복해했다. 주말도 없이 매일 12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고도 그 대가로 100만원 남짓한 월급을 가져오는 그녀의 남편 아지지는 이런 직장도 좋으니 일감만 있고 월급만 제때 받아도 행복하다며 늘 밝은 미소로 나를 대했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행복해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곤 했다.

그녀와 함께 일했던 시간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일은 아우암의 백일잔치였다. 정이 많고 성격이 원만했던 아메나는 백일잔치에 방글라데시 종료를 무려 200명이나 초대했다는 것이다. 나는 기도 차고 너무 놀라서 그 많은 사람을 데리고 어디서 어떻게 잔치를 할 것인가를 물었더니, 장소는 공장 마당으로 하고 음식은 친한 친구 몇 명이 염소 한 마리를 잡아서 방글라데시 방식으로 준비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남편과 함께 정식으로 초대되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아우암의 백일잔치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방글라데시의 방식이었기 때문일까? 그 잔치에서는 오히려 우리가 외국인이었다. 국가를 막론하고 잔치는 즐거운 것이었다. 아이들은 귓전인 채 목걸이, 귀걸이 등을 몸에 차며 멋을 내고 웃으며 이야기 하는 모습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잔치에 참석한 모두 오늘 만은 한국이 아닌 방글라데시로 돌아간 듯 행복해 보였고 이 잔치는 하루 종일 이어졌다. 아마도 그 잔치 이후 아메나 가족들은 며칠간 몸살을 앓았으리라.

얼마 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큰아들 오이온이 인근 교회 목사님의 배려로 어린이집에 다니게 된 것이다.

오이온이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사실과 한글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에 크게 기뻐하였다. 아메나 부부의 가장 큰 꿈은 두 아들이 한글을 공부하고 커서는 한국의 기업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어느 나라나 자식에 대한 교육열은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아메나의 부탁으로 종종 오이온의 어린이집 행사에 참석하여 함께 기쁨을 나누곤 했다.

어느 날 아메나가 심한 두통을 호소하기에 함께 신경외과, 내과, 이비인후과를 다녔다. 원인은 중이염이었으며, 반드시 수술을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그녀는 과거 방글라데시에서 중이염을 앓은 적이 있는데 그 당시 방치했던 것이 피로가 누적됨에 따라 악화된 것이었다. 문제는 수술비용이었다. 불법체류자에게는 건강보험도 적용이 안 되어서 큰 수술비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해야했다. 센터와의 상의하고 여러 군데 병원에 발품을 팔았고 어느 병원 복지과의 소개와 종교재단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수술 후 약 일주일을 입원하는 기간 동안 아이들을 돌보아주기로 하였던 올케 언니가 공항에서 입국허가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일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아메나의 남편이 회사 일을 쉬고 아이들을 돌보기로 하였다. 수술 날 아침, 환자복을 입고 수술실로 가던 그녀는 내 손을 꼭 잡은 채 “선생님, 저는 우리 아이들을 꼭 다시 보고 싶어요.”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아메나와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이야기하며 희망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그녀의 기운을 북돋아주었다.

아메나가 수술실로 들어간 이후 아메나의 남편이 아이들은 친구에게 맡겨두고 헐레벌떡 들어왔다. 아메나가 수술을 하는 동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이 곳에서 번 돈으로 고향에 땅을 사두었다고 하며 이제는 그 땅에 건물을 올려 세를 받고 지내는 것이 그의 꿈이라는 이야기 또한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한국에서 아이들이 정상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이야기 또한 하였다. 아메나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고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할 수 있었다.

그 해 크리스마스 즈음 내가 돌보고 있는 외국인 여성들과 그의 가족들이 우리 집에 함께 모여 파티를 벌였다. 각자 자신 있는 음식을 가져와서 나눠먹고 아이들과 함께 게임도 하면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 즈음 국가적으로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이 더욱 강화되어 외국인 노동자들은 거리를 마음대로 다닐 수 없었으며, 주변의 동료들이 잡혀 들어갔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아메나 가족 역시 불안과 초조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었다. 아메나의 남편 아지지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이에 센터 본부로 찾아가 대책을 강구하였으나 별다른 대책은 나오지 않았고 결국 아지지는 본국으로 강제 추방되었고 아메나는 아지지를 따라 방글라데시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메나의 송별회를 하던 날, 우리는 눈물을 글썽이며 서로가 있어 행복했노라고 이야기하며 아쉬운 이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지난 추석, 방글라데시에 있는 아메나로부터 반가운 전화가 왔다. 지금은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온 가족이 잘 지내고 있으며 두 아이 모두 건강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함께 전해주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기 전 그녀는 나에게 방글라데시에 꼭 한 번 방문해달라는 이야기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