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생활수기 공모전

봄날은 내 가까이

이지연 (사회복지학과)

나에게도 이제 봄이 다가오고 있다.

북한을 떠나 외국에서의 방황과 고통이 가득했던 생활에서 벗어나, 희망과 꿈을 찾아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하나원 교육을 수료하고 대한민국 사회에 첫 발자국을 내디뎠던 그 때!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도 없고 아무런 인연도 없는 생소한 땅이었지만 대한민국은 우리 조국이기에, 처음에 따뜻하게 맞이하여준 정부와 국민들에게 지금도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정부에서 배정해준 주공아파트에서 가족들과 보금자리를 펴고,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나름대로 직업훈련도 받아 회사에 처음으로 입사하여, 직장동료들과 즐겁게 일하여 통장에 첫 월급도 받고 사랑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앞으로 나에게는 늘 꿈만 같은 날만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자본주의사회를 잘 몰랐던 때였다.

돈이 우선이었던, 공부를 하고 싶어도 돈 때문에 먼저 찾았던 직장은 성과주의로 인해 사장님이 해임되시고, 구조조정으로 인해 나는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었다. 열심히 일하여 정년까지 가고자 했던 직장에서 겪은 구조조정은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을 피부로 느낀 첫 실직이었다.

나 혼자 열심히 노력하면 부자가 되는 줄 알고 돈만 쫒던 내가, 이 사회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유지되어 나가는지 모르고 앞만 보고 살아온 내가 부끄럽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자유시민대학에서 였다. 또 다른 직업을 찾던 중 자유시민대학에 입학하여 6개월 공부하면서 유명 대학교수님들의 초청강의를 계기로 배움에 대한 꿈을 다시 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모르고 잘못 살아온 것, 힘들 때만 찾고 조금 편하면 잊는 하나님, 그 외에도 금융, 정착, 창업, 보험, 미래의 꿈, 비전, 언어, 상호거래와 인간관계 등 정말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자유시민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졸업하기까지의 6개월은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수 있는 나만의 가치관을 세워서 오늘의 나 자신을 있게 만든 뜻깊은 시간이었다.

미처 알지 못한 것을 배울 수 있는 자유시민대학에서의 학업이 너무나도 재미있고 도움이 되어서, 새것에 민감한 젊은 북한이탈주민들에게도 갈 수 있으면 꼭 다녀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스스로를 다잡는 기회를 경험한 후에도 나의 생활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렵고 힘든 중국생활 속에서도 우리 가정은 똘똘 뭉쳐 열심히 살았었는데, 서울에서 가정의 붕괴를 겪은 것이다. 남편은 어렵고 힘들었던 지난날을 잊고 서서히 멀어졌다. 그의 무책임한 행동을 바로잡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지만 끝내 이혼을 하게 되었다. 혼자 몸으로 어린 두 딸을 부양하기 어려워 아이들을 한명씩 맡아서 키웠다.

중학생이 된 딸의 생활도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딸아이의 걱정스러운 친구관계, 의심스러운 행동에 대해 타일러도 아이는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반항하였다. 결국 갈등이 깊어져 언성이 높아지고 손찌검을 하게 되자, 아이는 가출을 하고 말았다.

겨우겨우 딸을 찾은 곳은 고시원이었다. 내가 힘들어서 그 마음을 아이에게 쏟아낸 것 같아서, 그런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사과했다. 우리 모녀는 고시원 방에서 서로 끌어안고 울었고, 딸아이도 자기도 잘못했다고 해주었다. 우리는 많은 노력으로 서로를 더 아껴주기로 다짐하였다. 우리의 노력과 아이 담임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과 정성에 딸아이는 학업에 열중하였고, 전교 글짓기 대회에서 상도 받고, 장학금과 표창장도 받아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정말이지 아이를 곧게 이끌어 주신 중원중학교 우민숙 선생님과 우리가정을 위해 힘써주신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공부해라’ 잔소리 하는 대신 ‘그래 같이 하자. 엄마도 공부할게.’라고 시작한 학업은 오늘 날 나의 희망이 되고 꿈이 되었다. 자유시민대학을 졸업한 후에 대학진학의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딸에게 열심히 사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이유가 보다 컸다. 그래서 2008년 친구의 도움으로 국제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늦은 나이에도 배움을 위해 도전하여 대학에 입학하였지만, 대학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언어, 학문의 차이에 너무 힘들어서 ‘과연 4년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많이 했다. 하지만 끝까지 격려해주시고 이끌어주신 교수님들 덕분에 나의 열정을 바쳐 학문에 몰입할 수 있었고, 어느덧 졸업을 앞두게 되었다.

요즘은 회사생활과 저녁공부를 통해 배운 지식을 활용해, 다른 북한이탈주민들이 한국사회에 잘 적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멘토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힘들었던 시간을 잘 이겨내고 두 아이 모두와 함께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고, 큰 딸은 간호대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 가정에도 봄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가족은 행복의 가장 큰 조건이지만, 상황에 따라 불행의 가장 큰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서로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도 나쁜 방향으로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에, 가족 모두가 서로 인생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고 함께 행복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부모는 스스로 자식들의 본보기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부모로서의 역할의 중요성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부모와 자녀 간에 갈등이 있을 때 자녀만 잘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많은 경우 부모가 먼저 화를 내고 윽박지른다든지 하여 본의 아니게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데, 그럴 때 부모가 자존심을 버리고 사과의 말을 건넨다면 참된 가족관계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아이들에게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이 세 마디를 쓰는 동안 몇 번이나 목이 메어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내가 한걸음 다가선 후로 우리 가정은 평화를 되찾았고, 앞으로 안정되고 행복이 넘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사랑하는 나의 딸들에게 엄마가 많이 사랑하고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