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생활수기 공모전

나의 가족, 나의 사랑, 그리고 나의 학교

손길순 (사회복지학과)

얼마전 남편이 내게 통장 하나를 내밀었다.

“몇 학기 남았지? 등록금이다~.”

통장을 펴는 순간, 어찌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까지 등록금을 내주면서 직접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도 아마 혼자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아내가 학교 다니는 것에 대한 금전적 부담은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앞으로 들어갈 등록금을 계산해둔 것 같았다.

이런 남편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사랑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가난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랑이, 행복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던 듯하다. 항상 엄하신 아버지와 우리 4남매 밖에 몰랐던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 아버지는 당신이 뚜렷한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장녀인 내가 졸업 후 빨리 돈을 벌어서 동생들을 부양하기를 바라셨다. 그로 인해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고, 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했다. 보수적인 아버지 때문에 집을 벗어나고 싶어서, 일부러 타지로 나왔다. 그때는 정말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장녀라는 이유로 내 꿈을 접어야 했던 현실도 너무 미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버지를 이해한다. 그리고 후회한다. 남들이 모두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하는 말도 지금은 알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가 더욱 그리워진다. 당신의 자격지심과 한계를 가족들에게 말도 못하시고 힘드셨을 우리 아버지. 많지 않은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내게 많은 짐을 주고 세상을 떠나셨지만, 아버지께 효도 한 번 하지 못한 후회스러움에 그리움만 쌓일 뿐이다.

아버지는 남편과의 결혼을 반대하셨다. 아버지 눈에 그때 나는 아직 스물네 살 철없는 딸이기만 해서, 과연 결혼해서 잘 살 수 있을지 걱정되어 반대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허락하시고 나서부터는 정말 남편을 따뜻하게 대해주셨고, 손주에게는 정말 많은 사랑을 주셨다.

남편과 나는 여섯 살 차이.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차이다. 어느 때는 아버지 같기도 하고, 오빠나 친구 같은 생각도 든다. 늘 내 편이 되어주는 영원한 나의 동반자이자 든든한 후원자이다.

결혼 후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동생들을 차례대로 데리고 살아야 했다. 고향이 시골이기 때문에 마땅한 취업 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둘 다 내가 사는 곳으로 올라오려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남편에게는 미안해서 남편눈치를 많이 보았지만 남편은 나에게 오히려 처제들과 사는 것이 더 좋다고 하면서 항상 부담감을 덜어주려 했다.

남편은 늘 옆에서 힘이 되어주는 존재이다. 시험을 볼 때는 내가 집중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데리고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 엠티를 갈 때도 마음 놓고 다녀오라고 아이들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남편. 조금은 미안할 때도 있지만, 정말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

가족이 무엇인지, 부부가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공부를 하고, 과제를 하면서 새삼 느꼈다. 과연 내가 가족이 없다면 살아갈 수 있을까?

아직까지도 자식들 걱정으로 살아가시는 엄마를 보면서 나도 엄마처럼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가난한 집안형편 때문에 대학을 보낼 수 없었던 것을 늘 가슴아파하시는 엄마는, 대학생이 된 내게 열심히 하라고 격려를 해 주시곤 한다.

국제디지털대학교를 알기 몇 년 전 나는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원서를 내고 공부를 시작했다. 육아와 가정 일을 병행해야한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오랜 꿈을 이루고 싶었기에 즐겁게 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중간고사 하루 전에 갑자기 아버지께서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고, 그래서 시험을 볼 수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그 아픔에 빠져서 학업에 대한 의욕을 잃은 나는 결국 학교를 그만두었다. 한동안 마음을 추스르며 집안일에 몰두하던 나에게 남편은 다시 시작해보길 권했지만, 이미 몸과 마음이 무기력한 상태여서 내키지 않았다. 우울증도 찾아와서 문득문득 눈물이 나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나를 걱정한 남편은 내게 사이버대학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남편의 응원과 격려 덕분에 늦게나마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늦었다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처음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날의 일이다. 나보다 어린사람들만 많을까봐 걱정하며 참석했는데, 연세 지긋하신 아버지 같고 어머니 같은 분들이 많으셨다.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는 한없이 창피하고 부끄러워졌다. 개구리가 우물 안에서 보이는 하늘이 다 인 것으로 알듯이, 그렇게 내가 어리석었던 것이다.

그 후로는 선입견을 버리고 열심히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입학식, 오리엔테이션, 개강모임과 종강모임, MT 등. 학교 행사에도 열심히 참여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렇게 내 삶의 활력을 다시금 찾을 수 있었다.

사회복지학과의 꽃인 박미현 교수님과 김수정 교수님, 그리고 지금은 다른 학과를 담당하시는 조상윤 교수님. 처음에는 교수님들께 어떻게 하면 잘 보일 수 있을지를 걱정했는데, 학교 행사에 참석해서 웃으며 대화하고 만나는 시간들이 바로 교수님들과 가까워지는 길이었다.

가족과 느끼는 행복과 또 다른 행복을 느끼는 요즘이다. 물론 가사와 직장 일을 함께하면서 저녁이면 강의를 들어야하는데 피곤해서 잠드는 적도 많다. 그래도 졸린 눈을 비비며 강의를 들어야 한다. 내가 계획한 목표를 위해서.

힘들어하는 내 옆에서 즐기면서 하라고 충고해주던 남편이 오늘은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 즐겁냐고.

그래서 나는 말했다. 끝까지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아이들에게 멋진 엄마가 되고, 당신에게는 현명한 아내가 되고, 교수님들에게는 훌륭한 제자가 되고, 후배들에게는 부러움을 사는 선배가 되고, 그런 멋진 여자로 영원히 남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