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생활수기 공모전

저도 부드러운 남자랍니다.

김옥중 (사회복지학과)

인생은 마치 변덕스런 봄 날씨와도 같아서 햇빛이 맑고 화창한 날보다는 흐리고 궂은 날이 더 많다고 했던가요? 하늘에서 구름을 쥐어짜듯 비가 오는 지금은 2010년 11월의 가을입니다.

비가 온 뒤 땅은 더 단단해지기 마련이지요. 마치 제가 살아온 인생길처럼 말입니다.

어릴 적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저는 경상도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어렵던 시절 만석꾼의 아들로 대학교육까지 마치셨던 엘리트셨고, 어머니는 지역 보건소에서 간호사로 의료봉사를 하던 분으로 저희 집은 부러울 것이 없는 화목한 가정이었습니다. 부모님 덕에 별다른 고생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내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고등학교를 마쳤으며 대학에도 들어갔습니다.

여느 대학생들처럼 예쁜 여학생을 찾아 미팅도 즐기고 캠퍼스의 낭만도 누리며 지내던 저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꼭 가야한다는 그 곳, 군대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막연하게 해병대에 가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공교롭게도 해병대 지원일이 마감되어서 어쩔 수 없이 지원하게 된 곳은 북파공작원을 양성하는 곳이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그 이름만으로도 고개를 숙이던 HID북파공작원 양성소에서 특수 교육을 받고 군 생활을 했습니다. 그곳에서의 군 생활은 악명 높기로 유명해서, 특수임무수행자들은 보상차원으로 전역 후에 보훈처에 등록되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군 생활은 정말 난생 처음 보는 생지옥이었습니다. 한겨울에 얼음을 깨고 차디찬 산골계곡에 몸을 담그는 것은 물론이고, 특공무술과 고곡낙하 등 수많은 특수훈련을 모두 이수해야 했습니다. 위험한 훈련으로 몸과 마음이 시간이 지날수록 단련되어갔지만, 당시에는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고 두려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지만 현실은 도망갈 곳이 없는 막다른 곳에 갇힌 듯한 상황이었습니다. 극한의 생활에 주변에서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는 전우들까지 생겨났습니다. 매일 밤하늘을 보며 따뜻한 밥을 지어주시던 어머니와 그리운 가족들 생각을 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게 생과 사의 경계에서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던 저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유격훈련 도중 1미터 아래로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다리가 부러졌는데도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고 3일을 버텼습니다. 당시에는 아프다고 하면 매를 각오해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피를 삼키는 고통으로 참아야만 했습니다. 결국 3일이 지나 병원에 갔지만 곧바로 퇴원하여 다시 훈련에 참가해야 했습니다.

훈련을 하다가 기절하는 것은 일상이 되고, 매일 밤마다 악몽을 꾸며 집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다가, 드디어 3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고 제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입대할 때는 36명이었던 동기들이 다들 훈련으로 몸이 망가져서, 저를 포함한 15명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남들보다 힘들게 군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집은 입대 전과 너무 달라져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서 제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김 양식장부터 건설회사 등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지만 집안사정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고, 점점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어렵게 일 해 번 돈으로 술집을 전전하고, 술에 취해 군복을 입은 사람들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파출소에서 난동을 부리는 폐인 같은 생활이었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 죽을 결심을 하고 바다를 찾아간 저는 문득 바닷물에 비친 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시련과 역경이 파노라마처럼 파도를 쓸며 지나쳐 갔습니다. 그리고 그리운 얼굴들도 보았습니다. 제일 먼저 어머니의 얼굴이었습니다.

‘괜찮다. 널 믿는다. 넌 할 수 있다.’는 말로 저를 위로하시고 당신은 뒤돌아서 눈물 훔치시곤 하던 어머니와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이 떠오르자, 지금까지 가족들의 사랑과 정성이 버틸 힘이 되어주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일어서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길로 상경하여 군대에서의 마음가짐으로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했습니다. 그렇게 피나는 노력 끝에 대기업 건설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봉선화라는 예쁜 꽃 이름을 가진 그녀는 고운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하지 않을 수 없는 그녀에게 반해 결혼까지 하고 아들도 둘을 낳았습니다.

젊은 시절 한때는 나라와 상황을 원망하며 방황했지만, 나이를 먹고 자식을 키우며 살다가 오늘날 돌이켜보니, 그런 시련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의 모습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시련 끝에 비로소 찾아온 지금의 행복에 감사하며, 나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 환경단체의 복지국장으로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자손들에게 푸른 자연과 푸른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밝은 내일을 만들어주고 싶은 저의 소망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는 하지만 정도는 있기 마련입니다. 누군가 힘들고 지칠 때 함께 정도를 걸을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나누고 봉사하며 살고 싶습니다.

이 글을 적으며 드는 생각은 삶의 무게가 무겁거나 내가 처한 현실이 가혹하게, 마치 이승과 저승을 차단하는 벽을 마주한 것처럼 느껴질 때라도,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올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행복은 누구에게나 손에 닿을만한 곳에 있으니까요.

국제디지털대학교 모든 구성원들의 평화를 진심으로 빌어봅니다.

2010년 11월 초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