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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JCU 생활수기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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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제11회 GCU 생활수기 공모전] 이광옥 사회복지학과 <사회복지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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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희망과 사회복지


이광옥 사회복지학과


 


내 고향


 


경치 좋고 살기 좋은 금강산과 송도 유원지, 항구문화 도시인 내 고향은 아름다운 고장이었습니다. 봄에는 산에 핀 진달래꽃을 보며 여름엔 뒷동산에 오르면 봄에는 산에 핀 진달래꽃을 보며 여름엔 뒷동산에 오르면 눈앞에 펼쳐진 바다의 시원함을 보며 가을엔 황금물결 출렁이는 들판의 벼이삭을 바라보며 겨울엔 푸른 소나무위에 소복이 쌓인 흰 눈을 보며 몸과 마음이 즐거워 행복해 하였습니다. 평범하고 소박한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슬하에서 증손으로 태어나 부러운 것 없이 살아가던 저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나아가는 사회에 대해서 옳고 그르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고향에서 어린 시절 부르던 노래의 한 구절이 생각나서 적어봅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눈에 익힌 어머니 얼굴 아기가 반기는 이 세상 기쁨이라네. 아 언제나 어머니 있으면... 어머니의 품은 당의 품


저는 태어나서 부터 엄마, 아빠라는 말보다 먼저 어머니 당의 품은 바로 아버지 김일성원수님이라고 가르침을 받고 자라났습니다. 11년제 의무교육과 무상치료제의 혜택을 받으면서 사회주의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없이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지구에서 사회주의 나라들 소련(러시아), 로므니아, 체코, 유고슬라비아 등 여러 나라들이 무너지고 자본주의로 나가면서 북한에서도 많은 타격을 받아서 배급제도가 붕괴되고 교류나 유통이라고는 없는 형편에서 백성들은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굶어 죽고 얼어 죽어 나갔습니다.


사회주의는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아가자고 하는 사회라고, 학교나 사회에서 배웠지만 북한에서의 사회주의가 백성들에게 굶겨 죽이는 사회라며 사회주의 사회에 대해 비판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나 장사를 하고 도적질하여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우리 가정은 밑천도 없었지만 장사를 할 줄도 모르고 도적질은 더욱 할 줄 모르며 고지식하게 살다 집에 있던 살림살이를 팔아서 굶으면서 두부 만들 때 남은 (비지)찌꺼기를 사서 먹으며 목숨을 유지하며 죽지 못해 살아갔습니다.


1997년대 고난의 행군의 시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셀 수 없이 굶어 죽어나갈 때 하루에 한 끼로 끼니를 때우며 살아간다는 것이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고 생각조차하기 싫습니다. 장마당에서 외상으로 받았던 물건을 경찰(안전원)들한테 회수 당했을 때 눈앞이 캄캄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정처 없이 정신이 이상한 사람처럼 도로로 걷던 일, 장사하러 갔다가 몽땅 다 도적 당하여 오도 가도 못하고 있던 일, 정말 상상도 못할 정도로 힘들고 지친 그 시절을 다시 떠올리면 자다가도 벌떡 놀라 손에 땀을 쥐고 일어납니다.


목숨 걸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서 남편을 만나 살면서 인간 아닌 인간다운 삶을 피난살이와 북송이라는 무섭고 험난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피난을 가야 하였고 도시와 산골을 가리지 않았고 어느 집의 농 안에서 지낸 적이 수도 없었으며 집안에 있으면서 있는 티를 안내고살아가는 신세가 사람 아닌 사람이었습니다.


한국에 갈 수 있다고 해서 떠났던 사람들 모두 잡혀서 북송되었다는 소식, 그리고 마을에서 살다가 붙잡혀서 북송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사람이 몸과 마음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습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세월을 거쳐 저에게도 한국으로 오는 길이 열려 7~8개월에 걸리는 고생 끝에 대한민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품에 안겨


 


저는 대한민국에 온지 6년이 넘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와서 제일 먼저 감동받고 마음 뜨겁게 한 것은 저에게 대한민국 사람으로 인정하여 주는 주민등록증을 받을 때 너무 감사하였습니다.


고향에서 굶주림으로 산 사람이 아니었고, 중국에서는 가짜 신분증을 만들었지만 북한사람이라고 하면서 북송을 피하려고 피난살이로 살아온 시간들이 생각나 주민등록증을 받을 때 뭉클하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자본주의 나라인 남조선은 헐벗고 굶주리면서 집이 없어 판자집에서 살아간다고 초등(인민)학교에서 배웠던 구절이 생각났지만 현실에 와서 보니 너무나 달랐습니다.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면 그 결과가 이루어지는 사회, 사회복지가 되어 있어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돌보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었습니다.


제가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고 국가에서 배려해 주는 아파트 집으로 내려 왔을 때 대한적십자 봉사자 어머님이 저를 맡아 돌보아 주셨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부나 안부를 묻고 필요한 부분을 함께 해결해주셨고 담당형사님께서도 항상 전화로 잘 있는가, 불편한 점은 무엇인가 또 동사무소 복지 담당자 분께서도 관심을 가지시고 여러모로 정착 생활하는데 도움을 주시었으며 공공기관에 가면 북한 사람이라고 더 따뜻이 대하여 주시고 가르쳐주셔서 당당하게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심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북한에서 태어나서 배우고 살던 저에게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알고 함께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도록 도와주고 이끌어주신 여러 병원 선생님들과 보안계장님, 적십자 봉사자 어머님, 복지기관 담당자 분들 대한민국이 너무 감사하였습니다.


저는 복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사회복지에 대하여 배우고 있습니다.


사회복지는 사회적으로 불만이 없는 상태, 만족할 만한 상태, 또는 안락하고 만족한 상태, 그리고 건강하고 번영한 상태 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며 전체적으로 사회적으로 평안하고 만족스러운 상태 또는 사회적으로 행복한 생활 상태로 정의해볼 수 있는데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생활을 보장하고 건강과 번영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인간과 사회제도 및 사회체계 간의 상호작용에서 파생되는 제반문제나 사회적 요구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해 나가도록 계획적인 사회정책과 사회적 서비스를 마련하여 제공하려는 공공 및 민간 기관들의 조직적 노력이며 체계적인 실천 활동이다.” 라고 봅니다. 여러 학자들의 정의가 넓고 폭이 크지만 협의 및 광의의 사회복지의 개념으로 볼 때 협의의 개념으로는 사회생활상의 곤란, 장애인, 노인, 아동 등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에 대한 보호, 육성, 지도, 치료, 재활 등의 서비스시책이고광의의 개념으로는 모든 국민의 건강과 행복을 보장하는 사회정책,사회보장,보건,의료, 주택, 교육 등으로 정의하여 봅니다.


저는 사회복지를 배우면서 국가가 국민을 위해 하는 정치, 경제 모든 부분들을 알게 되었고 북한에서 배우고 생활한 것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북한에서는 법위에 당이 있어 정치독제기관인 당에서 명령을 내리면 그것이 곧 법이고 정책으로 받들어 따라야만 합니다.


북한에서 선거에 참여하여 한사람도 빠짐없이 찬성 투표하는 김일성, 김정일을 최고 수령으로 지지하는 선거였는데 한국에 와서 선거에 참여하여 보니 모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투표하여 대통령을 추천하고 당선기간 후보자님들이 자신들이 나라를 이끌어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과 국민을 위해 어떻게 하겠다는 토론을 통하여 이야기 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국민을 위하는 정치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기가 사는 이 사회를 긍지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뉴스를 보면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언론의 자유, 신체의 자유, 문화의 자유가 있어 서로가 단점을 지적하고, 자본주의사회이지만 인권을 가장 소중히 여기며 법을 어기지 않는 한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결정하며 자기 앞길을 자기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국민 모두가 정책과 법을 함께 만들고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의 나라 땅 우에서 너무 다른 마음 아픈 현실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살아 온 우리는 두 개 나라가 아닌 한 민족입니다.


6.25전쟁으로 갈라져 살아온 64, 통일이라는 단어가 절박한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부터 북한에서 통일에 대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백두에서 한라까지 우리는 한 겨레... 함께 살 그날을 위하여 살아간다면서... 하지만 그때는 몰랐지만 한국에 와서 통일에 대해 생각해 보니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서로 이해하고, 서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그 날을 생각해 봅니다.


저는 사회복지를 전공하면서 사람은 일생동안 배우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평생교육에 대하여 도전하여 배우고 있습니다. 다문화 시대인 현실에 맞게 지식을 쌓으며 우리 다음 세대인 청소년들을 지도하고 인도하는 청소년 지도자, 상담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어 나가고 있습니다.


사회복지는 어렵고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저는 희망의 꿈을 이루어 한 민족인 북과 남이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에 적은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한국에 와서 정착생활에 힘들었던 것을 다 이겨내고 지금 희망을 안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 수 있었던 힘, 그 힘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 저를 따뜻하게 품어주고 이끌어주신 덕분입니다.


내 인생에서 성공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생각은 버리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희망의 꿈을 안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희망의 꿈은 하나 된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보기 위해 저에게 부족함과 모르는 것을 배워가고 나누어 가며 함께 하는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위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하면서 배움이라는 즐거움과 행복함을 맛보면서 시간을 내여 할 수 있는 봉사일(요양센터의 어르신들을 돌보고, 초등학생들의 집단 상담에도 참여)을 함께 하고 있으니 더없는 보람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수기를 마치면서 나의 희망과 사회복지에 대한 나의 견해와 앞으로의 목표를 다시금 정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대학에서 11회 학술 발표회를 기획하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드리면서 사회복지학과를 비롯한 여러 학과의 교수님들께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여기까지 잘하고 올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대한민국에게 감사드리고 통일된 하나의 우리가 되어 가는데 희망의 꿈을 펼치면서 열심히 잘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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