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생활수기 공모전

나의 희망과 사회복지

이광옥 사회복지학과

나는 1986년7월 2일에 태어났다. 그러니까 지금 내 나이는 스물아홉이 되었다.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스물아홉을 맞이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지금은 한참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나에겐 특별히 어린 시절에 관한 기억이 없다. 내 앨범 속에 간혹 내 어린 시절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곤 한다. 그걸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왜냐하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열 살까지의 기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평택에 위치하고 있는 동방 아동 재활원이란 곳에서 살았다. 스물두 살까지 살았으니, 그곳은 내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그곳에서 나는 다양한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살았다. 뇌성마비, 언어장애, 지적장애 등 각각 개성이 넘치는 친구들이었다. 그 때 친하게 지냈던 한 친구와는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만나고 있다. 그 친구 덕분에 난 지금 '시설’ 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고 있다.

그곳에서는 삼십 명 정도 되는 선생님들이 우릴 보살펴 주셨다. 그 분들이 우리의 밥을 챙겨 주시고, 목욕도 시켜주고, 합창이나 악기를 연주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또 그분들과 한 방에서 자기도 했다. 그래서 심지어 어릴 적에는 선생님들이 내 엄마인 줄 알고 자랐다. 실제로 난 그분들을 엄마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너무 자주 바뀌는 것에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내 삶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였기에, 특별히 큰 문제는 없었다.

동방 아동 재활원 안에는 동방학교란 교육기관이 있었다. 난 그곳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전공과 특수교육까지 마치게 되었다. 그곳에서 배운 많은 것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글을 읽고 쓰는 것이었다. 당시 한글을 배우는 것은 내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생각해서 자원봉사자와 일대일로 한글 공부를 했고, 밤늦게까지 방을 담당하는 선생님과 공부를 했다. 완전히 한글을 익히게 된 후부터는 글 쓰는 것을 좋아했고, 글을 잘 쓴다고 학교에서 상도 받았다. 그때 나한테는 꿈이 하나 있었다. 당시 난 글을 잘 쓰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언어로 나만이 생각하고 만들어내는 세상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중에 '시설’을 옮기게 되면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도 사라져버렸다. 왜냐하면 내가 옮기게 된 새로운 곳은 동방학교와는 좀 다른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아동시설에는 만 18세가 되면 성인시설로 옮겨야 하는 규정이 있었다. 나는 22살이 되었을 때 정들었던 동방의 집을 떠나 충남에 위치한 ‘000’ 으로 소속을 옮기게 되었다. 처음에 그곳에 도착했을 때 난 좀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그 전에 있었던 곳에서는 또래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익숙했는데, 새로 옮긴 곳에는 또래들도 없었고, 나이대가 훌쩍 높았다. 특히 중, 노년층의 남성들이 많이 있어서 분위기 적응이 쉽지 않았다. 대화할 사람도 없었고, 내가 좋아했던 것들-노래나 악기 등을 배울 수도 없었다. 게다가 분위기가 무척 엄했다.

그곳에서는 '개인생활’이란 게 없었다. 예를 들면,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어야 하고, 밥을 먹지 않으면 굶어야 했다. 잘 시간이 되면 무조건 불을 끄는 바람에 당황스러운 적도 많았다. 이곳에서는 자유가 없었다. 나는 꼭 무슨 수용소 생활을 하는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게다가 밥을 먹을 때는 살이 찔까봐 제약이 있었다. 평소보다 많이 먹기라도 하면 그만큼 꼭 운동을 해야 했고, 특별한 날이 아니면 음식 양을 정해놓고 더 주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는 컴퓨터를 통해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하는 시간도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힘이 들었다. 또 돈을 가지고 있을 수도 없었고, 가질 수 있다고 해도 고작 자판기 커피를 뽑아먹을 정도의 동전이 전부였다. 매일 똑같은 일상.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개고 화장실 갔다가 세수하고, 밥을 먹고 어영부영 목욕하고 청소하면 점심이 되고, 프로그램 하나 하고 물리치료하고 밥을 먹고 어영부영 하면 하루가 끝났다. 나는 이런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에 점점 지쳐갔다.

그러던 중 아동시설에서 친하게 지냈던 한 친구와 메신저를 통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당시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고 있었다. 난 당시, 시설 밖에서의 삶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고, 내가 나가서 혼자 내 힘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나한테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고, 자립생활센터에 근무하는 자신의 친구를 소개시켜줘서 나는 자립생활에 대해 현실적으로 준비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시설에서는 "넌 할 수 없을꺼야’라고하며 윽박지르기도 하고, 굉장히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개의치 않았고, 용기 있게 자립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아주 대단한건 아니었다. 남들이 시키는 하루가 아니라 내 스스로 중심이 되어 사는 하루를 원했다.

나는 지금 자립생활을 한지 일 년 반 밖에 되지 않은, 초짜사회인이다. 처음에는 남이 시키는 규칙대로 살지 않아도 돼서 자유로웠지만 대신 내가 결정한 일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 힘들기도 했다. 이제까지 남들이 해줬던 것을 내 힘으로 해야만 했으니까. 그게 익숙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집도 내가 구하고, 먹을 것도 내가 장만하고, 활동보조인을 비롯한 여러 사탐들과 책임 있게 관계를 맺어야 하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지금은 보다 능숙하게 '자립생활’이란 걸 해 나가고 있다. 극단에서 연극 활동도 하고, 성가대도 하고... 그 와중에 나한테 새로운 꿈도 생겼다.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나는 국제사이버대학교에 입학해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다.

특수교육을 통해 고등교육과정을 밟았지만 나한테 대학공부를 히는 것은 또 하나의 큰 꿈이었다. 지금 나는 국제사이버대학교 1학년 2학기에 재학 중이다. 매주 강의를 듣고, 레포트를 쓰고, 시험을 보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지만, 어려운 가운데서 하나하나 해 나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1학기 때는 공부에 재미가 붙어서 흠뻑 빠져 하다 보니 생각지도 않은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학비 걱정을 덜어서 그런지 2학기 공부를 더욱 신나게 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곡절이 있었지만,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립을 하고 나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학과 담당 교수님을 비롯하여 동영상 강의를 통해 가르침을 주시는 교수님들. 그리고 교회에서 만난 집사님이 그렇다. 그 분은 끈기 없는 나에게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주시고, 나를 격려해주셨다. 잘 할 때는 함께 기뻐해주시고, 못해도 최선을 다 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하셨다. 어쩌면 내가 무엇을 잘 하느냐가 아니라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난 것은 처음인 지도 모르겠다. 그런 소중한 인연들을 보살피면서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 이렇게 수기를 통해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내가 더욱 성장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회를 얻게 되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