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생활수기 공모전

중년에 맞는 인생의 황금기

사회복지학과 신정미

끝도 없을 것 같던 뜨거운 여름이 어느덧 뒷모습만 남기고 코끝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이 옷고름을 스치며 가을을 실감케 한다.

길가에 수놓인 코스모스를 보며 어린 시절의 향수에 젖어본다.

그때도 지금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었지만 내 마음은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흐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에 새로운 어머니라는 분이 계시는 상황에 적응을 못하고,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과 새어머니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은 초등학교 3학년이라는 나이에 가출을 감행하게 하였다.

자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의 새어머니는 우리 가족들과 친해지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했던 것 같다. 그분의 입장을 지금에야 백번 이해하고 철없던 내가 후회스럽기도 하지만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기엔 난 너무 어렸던 것 같다.

왜 그렇게 서럽고 억울하던지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새롭다.

나의 첫 번째 가출은 청량리역을 어슬렁거리다 경찰에게 붙잡혀 다시 야간열차에 실려 집으로 향하는게 고작이었지만 이를 계기로 나의 유년시절은 가출과 귀가조치가 반복되게 되었다.

어린 시절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성적은 당연히 바닥을 헤매었다.

중학교는 졸업했지만 고등학교는 마치지도 못하고 열일곱살이 되던 해 옆집 언니가 서울로 취업하러 간다는 말에 무작정 따라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낯선 서울이란 곳에서 일명 “공순이” 생활이 시작되었다.

집에서 공부를 더 한다고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지만 난 집에서 어떻게든 독립하고 싶었다.

서울 생활은 시골의 나른한 오후처럼 늘어지지 않고 역동적인 것이 참 재미있었다. 그러나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느껴지는 이상한 시선들, 그것은 배우지 않은 사람에게 향하는 무언의 돌팔매질 같은 것이었다.

이로 인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주간에는 직장을, 야간에는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며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게 되었다. 이왕 시작한 공부, 끝을 보자는 생각으로 대학까지 지원하였으나 대학은 내가 넘기엔 쉽지 않은 벽이었다.

대학을 나온다고 해서 내 인생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도 않았기에 대학생이 되겠다는 꿈은 더 이상 나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라 여기도 바로 포기하였다.

그리하여 나의 일상은 다시 한 번 평범한 직장인의 일과로 되돌아갔다. 그때는 학교에서 공부하기 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일이 더 좋았고, 주변의 눈치도보지 않으니 세상 그 무엇도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렇게 젊은 시절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결혼도 하게 되었으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도 낳아 생활하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나의 이런 일상이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도 했지만 나는 그런 평범한 생활이 좋았다.

가출이나 하던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생각은 어떻게든 평범하게 살아가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그러한 삶을 내가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돈이 많은 부자는 아니었지만 더 이상 부족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게 이번엔 남편이 자신의 다른 길을 찾겠다고 내 곁을 떠나버렸다.

나에게도 꿈이 있고 희망이 있었는데 남편은 그런 나와 아이들이 짐처럼 느껴진 듯하다.

남편을 붙잡진 않았다. 그러기엔 나도 지쳐있었고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과 살 길을 찾아야했기 때문이다. 남편을 그렇게 떠나보내고 난 아이들과 세상에 버려지듯 남았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여자가 두 명의 아이들과 살아가는 일이 많이 힘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큰 오산이었는지 깨달을 때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해 식당일이며 처녀시절 하던 공장일 등 가족을 부양하는 일이라면 막노동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했다. 집에 들어오면 몸은 물먹은 솜 마냥 방바닥에 퍼져버리기 일쑤였지만 오뚝이처럼 일어서야 했다.

나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한가하게 누워 피곤한 몸을 추스를 시간조차 없었다. 늦은 밤에 집안 청소와 아이들 빨래, 내일 아침밥 등을 준비해놓고 잠자리에 들면 누군가 내게 매질을 해도 깨어나지 못 할 만큼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럼에도 건강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이 너무 고맙고 대견할 뿐이다.

아이들이 이제는 스스로 공부도 알아서 하고, 자기들의 일은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자 갑자기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어린 시절 편하게 있었을 때에도 하고 싶지 않던 공부가 하고 싶어지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아직은 내 노후준비조차 하지 못했고, 아이들의 학업과 결혼 등 미래를 위해서 더 많은 저축이 필요하고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공부가 생각나다니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내 안에선 계속 지금 당장 공부하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조금이라도 더 젊었을 때 공부를 하는 것이 오히려 나를 위한 일이라는 절규에 가까운 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공부에 관심이 많았던가?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모를 일이다.

대체 내가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조차도 애매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며 인터넷 검색을 하던 차에 사이버대학이란걸 알게 되었다. 이게 진짜 대학인가?하는 의구심과 수능 없이도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것이 의심스러워 여기저기 알아보니 일반 대학과 똑같은 학위가 주어지고 공부하는 방법이 인터넷이라는 차이점만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장생활을 하며 공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이 사이버대학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게 적합한 대학이란 생각을 하니 마음은 벌써 하늘을 날아갈 듯 하였다.

여기저기 사이버대학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면서 지나치게 어렵게 느껴지는 학문의 벽과 종교적인 이미지 등으로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들던 때 국제디지털대학을 발견하게 되었다.

홈페이지에서 남자 교수님의 공개강의를 듣는데 학창시절 짝사랑하던 선생님 생각이 났다. 웃음이 나왔다. 게시판을 통해 내게 어울리는 학과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지금 현재 내가 하는 일은 구청에서 마련해준 저소득층 아이들을 지도하는 방문학습 선생님이라는 업무인데, 내 일과도 어울리고 장래직업과 연관하여 사회복지학고가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홈펭지에 나와있는 다양한 장학혜택을 확인한 후 학교에 전화해서 확인하니 최상의 장학혜택을 연계해주었고, 난 바로 등록하여 꿈에도 그리던 대학생이 되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하다 집에 오면, 또 다른 아이들이 사랑해 달라며 매달리는 바쁜 일과에 가장으로서, 주부로서, 학생으로서 살림과 공부는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더구나 요즘처럼 과제며 토론이며 줄줄이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생길 때면 은근히 포기라는 생각이 고개를 내민다. 누구의 말처럼 포기는 배추를 셀 때 사용하는 용어이지 하던 일을 그만 둘 때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요즘 우리 집의 풍경은 1년 전과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1년 전 우리 집의 저녁시간은 식사 후 텔레비전 앞에 모여앉아 멍하니 보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요즘은 컴퓨터 앞에서 책과 강의와 씨름하는 나를 보면서 아이들이 나와 함께 조용히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같이 놀아줄 시간도 부족하고, 경제적인 지원도 부족하지만 공부도 잘하고 삐뚤어지지 않고 바르게 자라주는 아이들을 보며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내 나이 이제 중년이 되어 맞는 황금기는 우연히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마흔이 넘는 나이에 꿈을 꾸었다는 것, 그것은 내 인생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시작이었고, 행복의 시발점이었다.

“인생은 꿈을 꾸는 자의 것”이라는 말처럼 삶의 기쁨도 한줄기 희망도 없이 지내던 내가 어느 날부터 웃고 있었다. 내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해준 국제디지털대학교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렇게 저렴한 비용으로 최상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나와 같은 처지의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어 새로운 도전을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지역아동센터를 설립하여 더 많은 아이들과 행복해져있는 나를 발견하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일에 고민하고 힘들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에게 당당히 외치고 싶다.

“지금 당장 일어나 꿈을 꾸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