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생활수기 공모전

동그라미의 파란 꿈

아동상담교육학과 박미영

홍수가 나서 떠내려가는 집기류를 본 건 아마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인 것 같다. 굵고 강한 비는 우리 집 뿐 아니라 나라 전체를 집어 삼킬 듯 며칠 내내 비는 그치지 않았다. 빗물은 흙탕물이 되어 집 담장의 반을 가득 채웠고 집 앞 다리 난간도 가끔씩 훑어가곤 했다. 어렸기 때문일까? 살림도구들이 이리저리 빙빙 돌며 둥둥 떠내려가는 모습이 어린 맘에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곡간에 쌀이 가득 채워져 있는 뿌듯함처럼 우리 집 지하 보일러실은 항상 연탄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비는 지하 보일러실까지 들어와 허리까지 차오른 빗물로 연탄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무너져 흙더미로 변해 있었고, 온 식구는 5살의 어린 동생까지 동원해 물을 퍼내야만 했다. 퍼내고 퍼내도 빗물은 줄지 않았고 씻는 것은 고사하고 식수조차 해결이 되지 않았었다. 어린 마음에도 물이 가진 힘이 무섭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주부가 되면서 물의 강력하고 대단한 힘을 깨닫게 되었다. 가끔 말라붙은 밥 알갱이를 솥단지에서 억지로 떼어내려 해도 밥 알갱이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늦잠이라도 잔 아침에는 저녁 설거지 후에 물 한 바가지를 부어놓고 잤더라면 하는 후회 아닌 짜증이 밀려오기 일쑤였다. 그래서 난 물은 부정형의 물질이 아닌 원의 모양을 가진 것이라고 단정지어보기도 한다. 외부의 마찰이 아무리 강해도 떨어지지 않는 밥풀들을 감싸고 있다가 부드러운 행주로 스쳐주기만 해도 아무런 흔적 없이 떨어뜨려주는 그 포용력과 강한 힘! 그것은 원만한 성품을 대표하는 동그라미의 모양이 아닐까 싶다. 물은 때론 무섭게 우리 인간들을 공포에 몰아넣지만 물을 다스릴 줄 알고 물의 특성을 파악하고 다가선다면 그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힘을 우리에게 맡겨 주리라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일부 도서 지역을 제외하고는 물의 소중함을 느끼고 실천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서울에서 수도를 설치한지 100주년이 넘었다고 한다. 물지게로 물을 퍼 날라서 사용하던 그 시절 물 한 방울이 소중했음은 말하지 않아도 당연한 것이리라. 지금은 수돗물 보급률이 99.9%라니 참 살기 좋은 세상이다. 이러한 생활수준의 향상과 편리함은 우리에게 물의 귀중함을 잊게 한 원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스스로가 물의 낭비는 아직 새어나가는 것이라 절실히 느끼지 않고 있기 때문일까?

얼마 전에 알게 된 “빗물 저금통”의 활용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비가 올 때 받아두었던 물로 정원을 가꾸기도 하고, 청소를 하는데 사용하거나 농작물 재배에 사용하게 되면 소독성분이 잔류하는 수돗물보다 생명력이 길고 튼실한 수확을 얻을 수 있다고도 한다. 한 유치원에서 빗물 저금통을 설치해놓고 아이들이 직접 물을 주게 하는 것을 보고 수도세 몇 푼 아끼는 것보다 아이들의 마음속에 남겨질 물에 대한 소중함과 절약하는 습관을 심어주는 의미 있는 산교육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내게도 생긴 새로운 통이 몇 개 있다. 세탁기 옆에 세워둔 큼지막한 김장용 고무통과 싱크대에 꺼내놓은 큰 솥, 세탁물이나 목욕물을 받아 변기물로 사용하기 위해 욕실에 가져다 논 양동이, 씻을 때 받아서 쓰는 통까지…. 몇 년 전 알뜰살림 여왕이라는 어떤 주부의 살림 방법을 보며 번거로워 보이고 쪼잔 해 보이던 모습이 이제는 궁색을 떠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단지 깨끗하고 편리한 것만 알던 처녀시절의 시각과 물 소비의 주체가 된 주부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경제의 법칙에서 소비가 미덕이 될 수도 있는 때도 있다고 배웠다. 인플레이션이 왔을 때 재고가 쌓여 결국 생산 가동이 중단되는 사태가 생긴다면 더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어느 정도의 소비는 원활한 유통구조의 순환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라 한다.

우리 인간이 자연의 순환에서 물의 소비가 미덕이 될 수 있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환경보호일 것이다.

환경 파괴는 생태계의 교란을 가져와 지구의 생명력을 위협하는 것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자연훼손과 무자비한 개발이 가뭄을 초래하고 동식물의 생태변화는 결국 인간에게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모진 가뭄으로 아프리카 케냐 마사이족 마을에서 소가 사라졌다고 한다. 소의 젖을 먹고 피를 마시며 소똥으로 지은 집에서 수천 년을 살아온 마사이족에게 소가 없는 생활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오랜 가뭄은 결국 마사이족의 생활방식까지 파괴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유목이 불가능해지자 농사로 전업을 하거나 도시로 향하는 사람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혹독하게 처벌받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 과연 누가 반성을 해야 할 것인가?

인간이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부지불식간에 지구를 오염시키는 한 요인일 수 있다.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일회용품이나 비닐, 플라스틱 자재는 물론,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샴푸, 가루비누, 퐁퐁 등 이러한 것들이 물을 더럽히는 주범인 줄 알면서도 우리는 그저 무덤덤하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한국인으로 최초의 우주대원이 되었던 이소연은 우주관찰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파랗게 반짝이는 별이 지구였다고 인터뷰하였다. 이렇게 생명이 존재하고 그 생명력을 지키기 위해 물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은하계 생명을 생성하고 보존할 수 있는 물을 가진 별들이 과연 얼마나 존재하고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푸른 지구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결국 물 절약을 통해 건강하고 깨끗한 물이 있는 터전으로 바꾸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느끼는 절약정신과 몸으로 행동하는 실천력, 결국 언행일치가 되어야 비로소 물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난 국을 끓일 때 국물을 많이 해서 함부로 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깨끗한 설거지는 모아놓은 쌀뜨물을 이용해 아크릴 수세미로 하고 있다. 가끔 고기나 생선을 요리한 날이면 밀가루를 퐁퐁 대신 사용하고 기름은 오렌지나 귤껍질을 사용하여 향도 좋고 피부에 자극적이지도 않아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기도 한다. 그리고 항상 수도꼭지는 최대로 틀지 않고 사용하는 등의 나의 작은 습관들은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뿌듯해하며 격려하고 유지해 나가리라 결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