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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JCU 생활수기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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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제5회 GDU 생활수기 공모전] 이경란 <뷰티디자인학과>

조회10265

노력은 꿈을 운반해 온다.


이경란 (뷰티디자인학과)



그냥 봉사를 시작하려고 미용학원을 처음 방문하였습니다. 미용봉사를 하려면 미용사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학원에서 그러더군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미용사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미용사가 별거야’ 이런 생각으로 배우기 시작했지요. 첫 시험을 보고 전 쓴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그래 두 번째에는 될거야’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하고 손에서 피가 나도록 연습에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한 것과 너무도 다르게 두 번째 역시 미용사 실기 시험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모든 시험에 운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도 들었지만, 결과를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이 길이 내 길이 아니구나’


이런 마음으로 미용사를 포기하려고 했는데 주변에 도움으로 세 번째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합격 발표날이 다가왔고 저는 다짐했습니다. ‘이번에 떨어지면 내가 미용을 하나봐라!’ 그런데 이게 왠일일까요 제가 제가 합격을 한 것입니다. 그 어느 자격증에 합격한 것보다 좋았고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오더라구요. 하지만 좋은 순간도 아주 잠시였습니다.


미용사 자격증이 있으면 바로 미용사가 되는 줄 알았던 저만의 착각이었지요. 봉사도 경험이 없으니 당연히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제 미용의 길은 시작되었습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시작하여서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과 인심 뿐 이었습니다. 다른 것과 다르게 미용을 시작하고는 포기라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더라구요. 그전까지 저는 일본에서 프로그래머로 일을 하였습니다.


미용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제 생각에는 전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가위 하나만 있으면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이 세상 최고의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모든 것을 미용 중 헤어하는 것에 열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미용실에 스텝으로 들어가서 하루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샴푸하고 또 샴푸를 하면서 받은 첫 월급이란? 상상할 수도 없이 적은 금액이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미용을 하는 동안 부모님은 착실히 도서관을 다니면서 고부중이라고 생각하시었고 미용을 한다는 것을 알았을때 집안에 반대는 말을 할 수도 없이 심했습니다. 심지어는 미용실에 출근을 해야 하는데 차비도 없이 집을 쫓겨나서 걸어서 출퇴근을 한 기억이 납니다. 미용실에 스탭의 일은 고되고 고되어 항상 몸을 녹초로 만들었습니다. 주변 선배들은 이런 절 이해하지 못했고 돌아가면서 몸이 우선이라고 늦은 저녁이 되면 힘내라면서 고기를 사주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용에 대한 배움의 배고픔이 시작되었습니다. 미용실에 근무만 한다고 알려주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알수있겠지요.


고민 고민 하다가 주머니 돈을 다 털어서 일본에 갔습니다. 커트의 베이직 만이 라도 배우자는 생각이 들었고, 몇일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저에게는 황금과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다시 미용실에 취직을 했는데, 이상하게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디자이너 선생님들이 커트를 할 때 뒤에서 보고 있으면 왜 머리카락을 그렇게 자르는지 원리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이 생각이 나면서 그래서 시작할거라면 확실히 배우자는 생각에 대학이라는곳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돈도 벌어야하기 때문에 일반 대학의 진학은 어려움이 있었지요 갈팡질팡 혼자만에 딜래마에 빠져 있을 때 저에게 힘어 되어준 것이 바로 국제디지털대학교입니다.


원격으로 공부를 하니 낮 시간에는 일을 할 수 있고 저녁 시간에는 공부를 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고 실습이 꼭 필요한 과목은 실습수업을 따로 하여서 좋았습니다.


이런 제 노력을 보시고 부모님도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열어 가시었고, 저에게 미용실을 할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그렇게 미용을 시작하면서 경험 부족인지 생각다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미용실을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다는 주변에 말이 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노력없는 대가는 없다’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새벽까지 연습을 하면서 실력 향상뿐이라는 생각과 손님을 만날 때는 더욱 친절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시간이 지나면서 단골 손님들을 만들었고, 노력으로 설명 잘 해주는 미용사라는 칭찬이 붙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미용실은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저는 더욱 열심히 공부하면서 일을 하였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저는 마음이 점점 황폐해지고 있었던 것을 제 자신이 몰랐던 거지요. 미용실의 생활은 단조로웠고 제 자신이 다른 것을 보기에는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피곤한 몸을 늘 이끌고 미용에 소홀하기 시작하면서 제 자신도 힘들어만 갔습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던 저에게 올해 8월 인생에 아주 큰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바로 교통사고로 인해서 디스크 수술과 오른쪽 팔의 상환신경RP의 손상이 오게 되었습니다. 디스크 수술을 받고 나온 날 부터는 저의 고민은 미용실의 운영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학교 공부를 못하면 안되는데 미용실은 다시 하면 할 수 있지만 공부라는 것은 지금이 아니면 안될것 같은 절실함이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학업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디스크를 수술하면서 대소변 장애가 왔고 전 그렇게 병원 신세를 벗어날수가 없었습니다. 전직프로그래머였던 저는 와이브루(무선인터넷)를 노트북에 연결에서 병상에서라도 학업은 진행되어야한다는 생각에 몸부림쳤습니다. 그렇게 병원 한 구석에서 저의 학업은 진행이 되었고, 다른 학우의 도움으로 자료를 복사해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중간고사도 병원에서 자료도 별로 없이 시험을 봐야만 했습니다. 오른손의 문제는 저에게 아주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인정하는데 한달 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은 약물치료와 재활치료를 병행하자고 하셨고 전 좋아질수만 있다면 어떤 고통이 와도 참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전 간단한 것을 손으로 할 수 있을 만큼 좋아졌습니다.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제가 느낀 것은 ‘하나님께서 이제 그만 조금 쉬어가라는 뜻’ 이라고만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용을 처음시작하면서 미용이라는 것을 짝사랑하게 되었고 너무도 열심히 짝사랑한 결과 이제 하나의 사랑으로 이루라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손과 머리가 일치하는 그런 미용사가 되라고 저에게 시련을 주신 것 같습니다.


저에게 손(실력)과 머리(지식)가 일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국제디지털대학교입니다. 늘 새로운 학문을 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제 마음속 깊은곳에서 미용에 대한 열정을 끌어 올릴 수 있도록 좀 더 넓은 시계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지금보다 더 큰 시련이 와도 저의 미용에 대한 사랑은 멈추지 않을 것이며, 실력만 뛰어난 미용사가 아닌 실려과 지식을 겸비한 미용인으로 승화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대한적십자서울으뜸이 미용봉사회의 총무를 밭고 있습니다. 사랑은 혼자만이 가지는 것이 skrlh 나누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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