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생활수기 공모전

[참신상 수상작]
장미연

영어라는 언어는 나에게 두 가지 의미 있는 삶을 가져다주었다. 하나는 relocaton 회사에서의 service provider였고, 다른 하나는 kindergarten에서의 영어 선생님이다. 영어라는 언어는 한국에서의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외국인과 나를 연결해주는 매개체였고, 이제는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아이들과 나를 연결해주는 고리가 되었다. 영어라는 언어는 낯선 이와 나와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인 동시에 내가 성인으로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나에게 힘을 준 것이 바로 이 영어이다.

3년 전 나의 첫 직장은 relocation 회사였다. 아직까지는 국내 사람들에게 relocation이라는 직업은 낯설다. 나 역시 부딪히기 전에는 마찬가지였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주한 외국인들이 낯선 한국이라는 곳에서 잘 적응하고 생활 할 수 있도록 돌봐주는 직업이다. 입국하기 전에는 비자를 대신 발급해주고, 입국해서는 housing consulting, area tour, culture training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학교 입학, 운전면허 발급 등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의 오감을 통해서 한국 생활을 도와주는 일인 것이다. 한국이라는 낯선 곳에서 이들은 갓난아이로 다시 태어난 것이고, 우리는 그 아이들을 돌보는 일인 것이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호기심,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 정신,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도와준다는 희열감으로 난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그렇게 relocation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또한 영문학과를 졸업하였기에 언어에 대한 문제는 그다지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차츰 지날수록 영어에 대한 나의 생각은 부담을 벗어나 공포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영문학과를 졸업했지만, 문학 작품 읽기 및 쓰기 위주였던 나의 대학 공부 방식은 회화 중심의 실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고객과의 의사소통에 한두 번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자, 나의 불안감은 하루하루 지날수록 날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놓으라는 대기업 및 중소기업 등 주요 외국투자기업들의 간부들이 우리의 주 고객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일은 고객의 공적인 일 뿐 아니라 개인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나의 작은 말 실수가 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그들에게 부정적으로 한국의 이미지를 심어주지는 않을까 등의 우려가 날 자유롭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의미 없이 뱉어진 나의 작은 말 한마디로 언어의 차이 뿐 아니라 문화의 차이를 몸소 느끼게 된 경우가 있었다. 고객과 함께 새로운 통장을 만들기 위해 은행에 간 적이 있었다. 꽤 까다롭게 굴던 은행 직원은 결국 우리의 요구를 거절하고 말았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oh, my god. I'm so sorry.” 라는 말을 고객에게 건네었고, “That's okay. We can open the bank account later. Thank you for coming and helping me today.” 라며 고객은 오히려 나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잠시 후, 그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oh, my god.'이라는 표현보다는 'oh my! or oh, my goodness.'를 사용하는 게 올바른 표현이라며 살짝 윙크와 함께 팁을 주었다. 많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하나의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분명 힌두교나 불교 또는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그 감탄사로 인해 언짢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소한 부분을 몰랐다는 부끄러움도 잠시, 작다고 생각하면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팁을 안겨준 고객이 고맙게만 느껴졌다. ‘아..언어를 구사함에 있어서 단지 음성이나 문자에만 국한하지 않고, 상대방의 생각, 상대방의 문화 역시 고려해야 하는 구나’ 라는 가르침을 얻게 되었다. 그 이후 나의 영어는 좀 더 신중해지고 다듬어 지기는 하였으나, 언어를 말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신감이 적어지기 시작하였다.

그 즈음 나는 새로운 고객을 맞이하게 되었다. 40대 중반의 매우 예의바른 일본 아저씨, Koji였다. Koji는 시종일관 긴장해 있던 나의 모습이 꽤나 흥미롭고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세계적 소프트웨어 회사의 간부였던 그는 오히려 서툰 나에게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고, Koji의 배려와 이해심은 영어에 대한 나의 공포심을 차츰 깨뜨리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한국의 음식과 언어에 관심이 많았던 Koji와 현장 영어에 목말라 있던 나는 서로의 배움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며, 절친한 친구로 발전하게 되었다. 언어의 장벽이 오히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로 순기능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Koji로 인해 말하기에 두려움을 떨친 나는 다른 손님들과의 관계도 차츰 자연스러워졌다. 2년 6개월 동안 relocation 일을 하면서 각국의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내가 만났던 그 사람들은 나와 단순히 영어라는 언어만 서로 주고받은 게 아니었다. 영어라는 공용어를 통해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 사람의 꿈은 무엇인지, 그 사람에게 있어 사랑은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영어는 나에게 단순히 취직을 하기 위한, 그 사람과의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 수단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두 번째 나에게 큰 보람과 희망을 안겨 준 직업 역시 영어 덕택 이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멀리 이사 가게 된 나는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만 했다. 나의 무기는 2년 6개월 동안 갈고 닦은 영어실력 이였다. 직업에 대한 나의 욕심은 봄볕에 피어나는 새싹 마냥 싱싱하고 푸르게 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알고 있는 영어를 다른 누군가에게 쉽고 재밌게 가르치는 건 어떨까, 그 누군가가 나로 인해 새로운 것을 깨우치게 되고, 그로 인해 기쁨을 얻는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두 번째 나의 직업으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선택하였다. 영어 선생님으로서 나는 취직을 하게 되었고, 나의 첫 근무지는 오산에 있는 한 어린이집이었다. ‘어린 아이들이 과연 얼마나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과 함께 떨리는 나의 첫 수업은 시작되었다. 역시나 긴장과 실수의 연속이었다. 평소 말하던 단어도 꼬이기 시작했고, 문장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아이들도 보이지 않았고, 순서도 까마득했고, 오로지 보이는 것은 겨울철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는 나의 손뿐이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나니, 아이들의 영어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한층 여유로운 수업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처음 나는 영어를 접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새로운 단어를 접하고 말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말하려 하고, 먼저 표현하려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굉장히 낯설게만 느껴졌다. 한번은 닭의 그림을 보여주며, “What's this?"라고 물어보았다. 흔한 단어이기 때문에 쉽게 대답할 수 있으리라 여겼지만, 갑작스런 나의 질문에 아이들은 쉽사리 chicken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던 중 한 아이가 자신감 넘치는 말로, "다~앍"이라고 소리쳤다. 순간 교실은 잠잠해졌고, 상황을 파악한 다른 아이들과 나는 폭소를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민망해서 풀이 죽어있을 만한 그 아이도 본인의 대답이 웃겼는지 이내 곧 함께 웃기 시작하였다. 순간순간 아이들의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큰 힘을 얻게 되고, 더욱 더 자신감을 갖고 아이들에게 더 많은 배움을 나누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4개월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참 너희들은 스펀지 같구나’ 라는 생각이 하루하루 지날수록 더욱 선명해졌다. 수업시간 내내 선생님이 굉장히 많은 양을 쏟아 내도 아이들은 거부감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게다가 게임과 놀이를 통한 반복 학습은 다른 무엇보다도 매우 효과적으로 아이들의 습득 능력을 키워줬다. 아이들의 습득 능력에 또 한번 놀란 것이다.

나는 어린이집 선생님이다. 나는 어린이집 영어 선생님이다. 일주일 내내 아이들은 나와 함께 부대끼고 나와 함께 생활하며 자연스러운 모습과 자연스러운 말투로 인사한다. 담임 선생님께는 ‘안녕 하세요’ 라고 인사하지만, 나를 보면 'Hello‘라는 말을 먼저 내뱉는다. 아직은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실력은 아니지만, 우선 나를 보면 Hello. Missha teacher. 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대견스럽고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4개월 동안의 어린이집 영어 선생님의 자리는 나에게 더 큰 배움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나는 영어 선생님이다. 나는 어린이집 영어 선생님이다. 그렇다. 나는 중.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 아니라, 어린이집 영어 선생님인 것이다.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자만했었다. 그러나 4개월 동안의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내 가르침의 대상은 어린 아이들임을 나는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어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영어 단어를 말해주는 선생님이 아닌, 함께 공감하고, 함께 느끼며, 함께 놀 수 있는, 무엇보다 자신들의 행동과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선생님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의 나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과 함께 커가는 아이의 모습이다. 영어와 어린이들의 거리를 좁히고, 서로가 유기적으로 함께 커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밀어주는 역할을 하는 어린이집 영어 선생님이 되는 것이 현재 나의 가장 큰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