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생활수기 공모전

병간호라도 할 수 있다면....

장려상

사회복지학과
정소미

결혼8년차 주부인 저에게는 이제 세돌을 맞는 딸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요즘 문득문득 엄마 생각이 더해갑니다.

올해는 엄마가 돌아가신지 12년이 되는 해입니다. 큰 며느리였던 엄마는 꼬박 5년간 자궁암으로 투병하시던 할머니의 병 수발을 하셨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가슴 한 편으로 후련할 만도 한데, 엄마는 49제가 끝날 때까지 매일 밤만 되면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49제가 끝나고 저희 가족에게는 믿지 못할 소식이 찾아 들었습니다. 엄마가 유방암 3기 판정을 받으시고 오른쪽 가슴을 도려내는 수술을 받으셨지요.

엄마는 심약한 저를 걱정하시며 병원에 가신다는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두려움과 걱정에 눈물 흘리는 저를 꼭 안아주시며 “괜찮아. 엄마 안 아프니까 걱정하지 마.”하고 안심을 시켜주셨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막연히 엄마의 병을 고쳐주어야겠다는 마음에 신문과 잡지를 뒤져 좋다는 약을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어떤 잡지에서 말기 암을 고친 사람이 있다는 기사를 읽고는 주소만 들고 엄마와 함께 무작정 그 곳을 찾아 나섰습니다.

한나절을 헤매다가 파출소에 사정을 얘기하고는 겨우 그곳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미 수술을 한 사람은 해당이 없다며 돌아서는 치료사 앞에서 저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엄마는 아픈 몸으로 한나절을 헤맨 정성을 생각해서 진맥이라도 한번 해달라고 매달렸지만 그 사람은 매정하게 돌아섰습니다.

정작 하늘이 무너졌던 건 엄마였을 텐데 서러워 흐느끼는 딸에게 “추운데 고생했다. 배고프지? 엄마랑 밥먹고 집에가자. 괜찮아 울지마. 정말 엄만 괜찮아.”라며 달래고는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엄마와 저는 암에는 민들레가 좋다는 말에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민들레를 뜯으러 다녔습니다. 엄마는 자식들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의지로 아침마다 입에 잘 맞지 않는 생야채를 먹고 끼니때마다 모래알 같은 현미잡곡을 씹으셨습니다.

중학교를 제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해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시다 며 밤새 교복을 손수 지어주셨습니다.

엄마가 투병하신지 몇 년, 그 무렵 저도 이유없는 병을 앓다 의식을 잃어 엄마와 같은 병원 중환자실에 실려갔고, 꼭 한 달을 그렇게 입원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게 엄마와의 마지막일거라 느꼈던가 봅니다. 함께 있고 싶은 마음으로 저 또한 아팠던가 봅니다. 링거를 꽂고 모녀가 마주앉아 있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참 가슴이 아팠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은 제겐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 엄마를 마주보고 앉아있을 수 있다는 것, 엄마와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으니까요.

한여름에도 춥다 시던 엄마 옆에서 쇠꼬챙이처럼 말라버린 엄마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그렇게 한 달은 엄마와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엄마는 3층에서 전 지하1층에서 각자 다른 병동을 썼지만, 오전 회진과 주사 투약시간이 지나면 전 휠체어를 타고 엄마가 있는 병동으로 가 엄마의 식사를 돕고, 엄마의 수발을 들었습니다.

제가 퇴원하고 일주일 후 꿈을 꾸었습니다. 엄마가 병원에서 뀌어 나와 어디론가 달리는 모습을 보았지요.

평소엔 산소마스크 없인 숨이 차서 말도 못하던 엄마였는데 꿈속에선 그렇게도 가뿐히 달릴 수 있었습니다. 맨 발로 뛰어가는 엄마 뒤를 신발을 들고 제가 부르고 있었습니다. 신은 신고 가시라고요. 자갈밭 길도 그렇게 맨발로 뛰던 엄만 서쪽 끝 어딘가에 멈춰서더니 싸늘한 표정으로 뒤돌아보시며 “이젠 따라오지마, 아직 넌 올 때가 아냐.”하시곤 사라지셨습니다. 꿈을 꾼 지 반나절 만에 엄마가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말기 암 환자가 고통에 신음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늘 남겨질 자식들 걱정에 많은 것들을 당부하시던 엄마만을 기억할 뿐입니다. 엄마는 저에게 아무 말씀도 않으셨지만 다른 가족에게 제가 그저 평범한 여자로 살기를 바란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아마도 할머니와 엄마의 오랜 투병을 지켜보며 종교에 많이 기대던 당신의 딸이 혹여 평범치 않은 삶을 택할까 걱정하셨던 모양입니다.

결혼 6년 만에 귀한 딸아이를 얻으며 다시 한번 엄마생각이 간절합니다.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당신은 아픔을 감춘 채 심약한 딸이 잘못되진 않을까 그것만을 염려했던 엄마의 사랑, 그것이 엄마의 마음이라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갑니다.

나의 딸이 조금이라도 아플 때, 혹 더 많이 나빠지진 않을까 밤새 잠 못 들고 아이를 걱정스레 지켜보는 어머니의 마음.

당신의 아픔보단, 당신의 육신보단 자식의 안위가 먼저였던 어머니의 마음.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아파도 아프단 말할 수 없었던 엄마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땐 이런 마음을 구체적으로 알 순 없지만, 아마도 느낌이란 것이 있어서 내가 아파서라도 그렇게 함께 병원에 입원해서라도 엄마를 지키고 싶었나 봅니다. 지금은 엄마의 얼굴도, 엄마의 음성도 모두 잊혀지고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애처롭게 자신의 딸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어주시며 보듬던 엄마의 채취는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때 나이 다섯 살이던 열 살 터울의 남동생을 지금껏 키워오면서 그 어린 것 놓고 가셔야 했음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어린시절 그저 내 앞날의 장애물이었던 동생이지만 내 꿈과 내 미래를 이를 악물고 접으면서도 동생에게 엄마에게 원망할 수 없었습니다.

그건 그 누구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조금 늦었지만 그때 포기해야 했던 공부를 지금 할 수 있음도 아마 동생을 끝까지 지켰던 지난 12년의 세월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의 아픔과 좌절 힘든 생활이 없었다면 아마 이만큼 제 인생의 질이 풍족하진 않았을 거라고요. 그땐 잊으려 애썼던 엄마의 기억을 지금에서야 찾으려 애씁니다. 당신의 아들, 빨이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다고 그러니 더는 걱정 마시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들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꼭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엄마가 제게 보여주신 모습 그대로 엄마의 어린 아들 훌륭히 키워냈고, 엄마가 바라시던 평범한 엄마로, 아내로 정말 잘 살고 있다고 말입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의 크신 사랑 잊지 않고 가슴 속 영원히 사랑합니다. 이젠 불러도 돌아올 수 없는 메아리를 제 딸에게 그리고 동생에게 보내려 합니다.

당신이 제게 주셨던 그 사랑을 말입니다.